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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에서 시작하는 도시재생 ― 분절화된 구조를 바꿔야 진짜 도시재생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도시 곳곳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많은 현장에서 남은 것은 새로 칠한 외벽, 반짝이는 벽화, 운영비가 계속 들어가는 커뮤니티 시설,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피로감이다. 문제는 성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시를 고치려 하면서, 정작 도시의 뼈대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혹은 도로의 폭 대비 용적률의 비율은 손대지 않았다. 그 결과 체감되는 삶의 질의 변화는 한정적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바꾸기는 하는데 와닿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는 도시재생을 외쳤지만 벽화를 그리고 뉴빌리지 정책을 펴는 등 엄청난 의지를 보였지만, 실제로 의미있는 진전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즉 지금까지의 도시재생은 대부분 ‘건물 단위’ 혹은 ‘경관 단위’ 개입이었다. 낡은 집을 고치고, 골목을 정비하고, 프로그램을 얹었다. 그러나 도로 폭은 그대로였고, 블록은 쪼개진 채로 남았으며, 필지는 잘게 분절되었다. 도로의 폭은 변하지 않고 교통대란에 대한 해답은 없었고 일구밀도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이 상태에서 아무리 집을 고쳐도, 도시는 다시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도시의 문제는 집이 아니라 큰 구조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2017년 문재인정부의 도시재생 : 블록 단위의 재생에 대한 내용이 없고 '노후 주택이나 공공임대주택, 저소득층 주거'와 같은 분절화된 단어 중심이다.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구를 늘리고 건물을 높이는 일이 아니다. 도시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매일 반복적으로 마주치면서도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공간적 장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연속된 공공 공간, 예측 가능한 규칙, 약한 관계가 축적되는 거리, 그리고 시간이 쌓일 수 있는 구조다. 이 조건이 갖춰질 때 비로소 도시는 도시가 된다.

고층 아파트 단지는 주거를 제공하지만, 도시를 만들지 못한다. 단지는 블록을 해체하고 거대한 사유 공간을 만든다. 도로는 끊기고, 1층은 도시와 대화하지 않으며, 관계는 수직으로 분리된다. 관리와 효율은 높지만, 시간은 쌓이지 않는다. 결국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도시의 기억은 전면 삭제된다. 이는 나쁘다기보다 취약한 구조다.

반대로, 4~8층 규모의 중층 블록형 도시는 다르다. 이 높이는 인간의 인지 범위 안에 있고, 엘리베이터에 의존하지 않아도 일상이 성립한다. 밀도는 충분히 확보되면서도, 도로와 거리, 1층이 살아난다. 보행과 차량의 흐름이 분리되고, 소음과 갈등은 공간에서 완충된다. 중요한 것은 이 구조가 한 번 만들어지면 50년, 100년을 버틴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기존 도시재생을 ‘돈 낭비’라고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를 건드리지 않은 채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방식에 대한 직관적 거부감이다. 그러나 해결책은 폐기가 아니라 전환이다. 지금까지 도시재생에 투입된 예산은 실패의 기록이자, 동시에 가장 강력한 데이터 자산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예산을 회계적으로 회수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회수하는 것이다. 어디에 얼마가 들어갔고, 무엇이 바뀌었으며,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지를 구조 지표로 다시 정리해야 한다. 평균 도로 폭은 변했는가, 블록 크기는 달라졌는가, 필지 통합은 일어났는가, 1층의 공공성은 강화되었는가. 그리고 3년, 5년, 10년 후에 인구, 공실률, 유지비는 어떻게 변했는가. 이 데이터베이스는 기존 도시재생 모델을 감정이 아니라 숫자로 뒤집는 도구가 된다.

 

 

새로운 도시재생의 정의는 단순해야 한다. 공공은 건축하지 않고, 도로와 규칙만 만든다. 건물은 민간이 짓고, 공공은 질서를 정하며 실험적인 적용을 한다. 이것이 블록형 도시재생이다.

 

 

 

 

이 모델은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보수적이다. 새로운 것을 덧붙이지 않고, 도시가 원래 작동하던 방식으로 되돌린다. 사람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 나쁜 사람이 와도 버티는 구조를 만든다. 지속가능성이란 친환경 자재나 최신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바뀌어도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수도권도 아니고, 변방도 아닌 곳에서부터 작게 시작해야 한다. 아파트 이전의 도시 조직이 아직 남아 있고, 전면 재개발과 방치 사이에서 길을 잃은 블록들이 존재하는 곳. 여기서 한 개의 시범 블록만 제대로 만들 수 있다면, 그 모델은 전국으로 적용될 수 있다.

도시재생은 더 이상 집을 고치는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도시재생은 구조를 다시 짜는 일이어야 한다. 블록에서 시작하지 않는 도시재생은 결국 다시 낡는다. 그러나 블록에서 시작한 도시는, 시간이 지나도 도시로 남는다.